[한겨레21] 자해러, 힐러가 되다


“네가 자해한 경험도 너에게 큰 자산이 될 거야. 많은 아이를 이해해줄 수 있을 테니까.”

2000년대 초 어느 가을, 중2 김현아(가명)의 담임선생님은 ‘자해하는 아이 현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은사의 예언대로 현아는 ‘운디드 힐러’(Wounded Healer), ‘상처받은 치유자’가 됐다. 지금은 수도권의 한 중학교에서 상담교사로 일한다. 자신의 상처에서 배운 지혜로, 학교 현장에서 섬세하고 진솔하게 아이들을 어루만지고 있다. 다만 ‘한때 자해했던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김 교사를 잘 모르는 학부모들이 ‘내 아이를 맡겨도 되나?’ 불신할까 우려해, 동병상련의 과거를 공공연히 털어놓지는 않는다.

중2. 감정이 폭발하고, 존재에 대한 고민이 깊고, 세상의 중심이 나인 듯 관심받고 싶은 과도기. 그러나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내가 충돌하면서 부서지고 깨지는 시기. 아울러 그 혼란스러운 감정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질풍 같은 시기. 김 교사도 그때 그랬다. “너무너무 힘들어서 자해했다”는 아는 언니를 위로하다가, 어느 힘든 날 ‘자해하면 정말 괜찮아질까?’ 싶었다. 그렇게 한번 해본 것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고 습관이 됐다.


‘자해러’를 구한 세 사람

그렇다고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탓에 자해가 폭증했다’는 우려처럼 “언니 때문에 자해했다”고 남 탓을 하려는 건 아니다. 마음이 행복하면 자해 얘기를 백 번 듣고 자해 영상을 천 번 본다 한들 자해를 했을 리 없다. 아픈 엄마, 무심한 아빠… “너무 잘 보이는 곳에 자해했지만 부모님은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을” 정도로 관심받지 못한 어린 마음이 괜찮을 리 없었다.

중3 때까지, 2년간 심하게 자해했다. 그가 “고등학교 때부터 스스로 ‘도구를 써서 하는 자해’를 아예 안 하게” 된 건 세 사람과 특별한 관계를 맺은 덕분이었다. 상담교사가 된 지금 “사람을 살리는 건 결국 관계”라는 신념을 가지고 아이들과 만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첫 번째 인연, 삶의 방향을 바꿔준 중2 담임선생님이다. 그는 “내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준 분”으로 기억한다. 담임선생님과 서로 잘 몰랐던 중2 초 자해가 시작됐다. 담임은 2학기 후반 현아의 자해 사실을 알았다. 보통의 교사들은 일단 자해를 문제 행동으로 간주한 뒤 상응하는 조처를 찾는 데 급급하다. “왜 그랬어? 어머님께 연락하겠다”고 다그치는 게 전형적인 모습이다. 중2 담임은 달랐다. 자해하고 온 다음날이면 “현아야, 어제 뭐가 그렇게 힘들었니?” 물어봐주고 “마음을 쓰담쓰담(쓰다듬어)”해줬다. 중3 때도 도덕 교사로 현아네 반에 들어올 때마다 관심을 가져줬다. “만일 그때 담임선생님이 다짜고짜 ‘아이가 자해한다’며 부모님을 호출했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잘 자랐을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지금 김 교사의 생각이다.

물론 중2 담임선생님께 큰 사랑을 받았던 그때 바로 자해를 멈춘 건 아니다. 일단 시작한 자해를 바로 멈추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선생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는 분명히 성장하고 치유받았다. “14살 나와 15살 나는 상상을 못할 만큼 성장했다. 한번 관심을 받고 존중받으니까, 서서히 존재감을 찾게 되더라. 한 사람을 존경하게 되니까, 나와 관계 맺는 모든 사람이 달라 보이기도 했다.”

두 번째 인연, “누가 ‘현아가 도둑질했다’고 해도 나는 너를 믿는다”고 지지해준 고1 담임선생님. 그리고 세 번째 인연, “네가 자해하면 나도 똑같이 할 거”라며 함께 아파해준 고교 친구.

김 교사는 그렇게 “유의미한 타인의 진실한 수용과 인정”을 디딤돌로 자해라는 문턱을 서서히, 그러나 완전히 타넘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고 대학에선 심리학을 선택했다. 우연찮게 교직도 이수했다. 진로를 결정할 무렵 ‘나는 학교에 가라는 운명인가보다’ 했다. 담임을 맡아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김 교사의 ‘유능감’은 상담 쪽에 있었다.


‘유능감’이 절실한 아이들

상담교사 3년차. 올해에만 3월부터 10월까지 자해하는 아이 8명을 상담했다. 김 교사에게 오는 아이들이 “친구들 중 10~15%는 자해하고, 발견되는 아이가 절반도 안 된다”고 말할 정도로 요즘 자해하는 아이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보통은 담임이 다른 학생들에게 제보받아 위클래스(학교 상담실)에 상담을 의뢰한다. 안타깝게도 상담실에 안 오고 싶어 하는 자해 학생이 많다. 김 교사는 억지로 상담실에 오라고 하지 않는다. 자해했다고 강제로 상담실로 보내버리면 아이는 ‘정말 힘들어서 상담받고 싶은 순간’에 갈 데가 없어진다. 상담실은 그 아이에게 ‘이미 한번 처벌받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김 교사가 자살 시도 등 비상 상황이 아니고서는 상담 의무화에 반대하는 이유다.

상담을 오래 한 선배 교사들은 최근 1년 사이 자해가 급격히 늘어났음을 체감하고 있다. 그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자해는 10년 전, 20년 전에도 있었다. 그가 중2 때 자해했던 것처럼. 그의 중학교 동창 중에도 “우리 학교엔 자해하는 애가 없었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다. 바로 옆에서 자기 친구 현아가 자해하고 있었는데도. 김 교사는 말한다. “그때는 자해 사실이 알려지는 범위가 제한적이었다”고. 반면 “지금은 SNS에 자해 사진을 한 장만 올려도 엄청나게 확산되니까 ‘자해 대유행’처럼 보인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교사는 자해의 원인에 대해서도 매우 신중하다. “자해하는 친구마다 사정·생각·의도·이유가 다른데, ‘자해는 이래서 한다’고 성급한 일반화를 하면 안 된다. 나는 누구를 대변하지 못한다. 나는 나밖에 대변 못한다.” 그래도 그는 잘 안다. “그 시기 아이들은, 아니 인간은 관계성·자율성·유능성 이 세 가지가 무너질 때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친구 관계가 안 좋거나, 부모한테 자율성을 과도하게 억압받거나, 잘하는 걸 인정받지 못할 때 자해한다. 부모들은 ‘우린 너 먹여 살리려고 뼈 빠지게 일하는데, 너는 공부하고 놀기만 하면 되는데 뭐가 힘드냐’고 하지만, 모르는 얘기다. 부모는 돈을 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유능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부모는 가정에서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누린다. 혹시 부모도 관계성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유능성·자율성 측면에서 아이들보다는 덜 약하기 때문에 버틸 수 있다.

김 교사는 자해하는 아이들의 부모에게 이 점을 더 강조한다. 그는 학부모에게 아이의 자율성을 과도하게 통제하는 행위를 자제하라고 당부한다. 휴대전화나 외출에 제한이 불가피한 경우라면, 아이와 논의해서 규칙을 정하고 규칙을 어겼을 때 합의된 대로 제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해준다.

아이들에게 유능감을 느끼게 해주는 건 김 교사가 직접 노력하는 부분이다. 부모들에게 ‘조건화되지 않은 칭찬’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다. 그는 게임 잘하는 아이, 연애 잘하는 아이, 화장 잘하는 아이, 심지어 상담 시간을 잘 지키는 아이도 “되게” 칭찬해준다고 했다. 한국은 아이의 능력을 공부와 외모, 결국은 ‘돈’이 될 수 있는 힘으로만 재단하는 부자연스러운 사회다. 김 교사는, 비록 이 사회가 추앙하는 힘이 아닐지라도 아이들 하나하나가 가진 ‘고유한 힘’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감탄해준다. 칭찬이라기보단 ‘존재 인정’에 가깝다. “게임을 한 번만 해봐도 안다. 게임 잘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김 교사가 진심으로 아이의 힘에 감탄해주면, 아이의 표정이 달라지고 관계가 변한다.


감탄하면 아이가 바뀐다

상담하러 오는 아이들은 어른들이 ‘쓸데없다’고 치부하는 고민도 많이 한다. 같은 고민을 많이 해본 김 교사는, 결코 쓸데없는 고민이 아니며 꼭 필요한 질문이란 걸 안다. 아이의 말을 경청하고 그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준다. 관계에서 오는 행복감을 통해 아이들이 ‘세상이 살 만하구나’라고 느끼길 바라기 때문이다.

‘공부 왜 해요?’는 상담실에 오는 아이들의 단골 질문이다. ‘진짜, 공부를 왜 할까?’ 정답이 없더라도 아이와 오래오래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이야기하면, 김 교사는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격렬하게 공감해준다. 자해하는 아이들은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다. 일단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은 아이는 ‘위기 학생’으로 낙인찍히는 분위기지만 김 교사는 반문한다. “중학교 때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안 해보면 도대체 언제 생각하나?”

사실 아이보다 부모가 더 큰 문제인 경우도 많다. 그는 “자녀가 자해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 아이는 다른 애들이랑 다르네’ 비교하며 겁부터 먹지 말고 ‘내 아이는 어떤 아일까, 어떻게 커나갈까’ 생각하며 자기 아이에게만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그게 잘 안 될 때? “보통 자기 마음이 힘든 부모들이 아이가 자해했을 때 압도당하는 경향이 있다”며 “아이 때문에 부모가 너무 불안하고 힘들면, 그냥 부모가 상담을 받으시면 된다”는 돌직구 답변이 돌아왔다.

상담교사를 제일 힘들게 하는 것도 부모나 다른 선생님의 ‘재촉’이다. 부모와 학교는 아이의 고통은 그대로 둔 채, 일단 자해만 멈추게 하라며 무리하게 상담자를 채근한다. 중학교에는 친구 관계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가 많다. 상담을 받고 관계의 기술을 배운다고 하루아침에 없던 친구가 생기지는 않는다. 아이가 무언가를 잘해서 유능감을 느껴보는 일도 상담 한두 번에 되는 일이 아니다. 김 교사는 “아이가 제대로 자기 자신을 알게 되고, 세상이 괜찮은 곳이란 걸 깨닫게 되고, 즐겁고 행복한 것도 느껴보고, 스스로 어느 정도 괜찮아져야 자해 행동을 멈춘다”고 강조한다. 힘든 건 변함없는데 자해 행동만 다른 것으로 대체한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김 교사가 자해하는 아이들을 방치한 채 무턱대고 기다리기만 하는 건 아니다. 자해하는 아이들은 분노·짜증·우울 등 부적(부정적) 감정을 1~10 척도로 잴 때 “10일 때 자해한다”고 입을 모은다. 부적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오늘은 도저히 못 넘어가겠다’ 싶은 그 순간 자해를 한다는 얘기다. 부적 감정이 10인 상태에서는 자해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그 감정을 해소하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오히려 고통이 절정에 이른 힘든 밤, 아이가 죽지 않고 그 밤을 넘길 수 있는 방법을 택해서 살아남은 거라고 받아들여준다. 다시 말해, 자해를 막으려면 아이들의 부적 감정이 10까지 가지 않도록 스트레스를 관리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평소 상담하면서 아이들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아이들이 유능함을 발휘할 기회를 제안해주면서 스트레스가 10까지 쌓이지 않도록 돕는다.


자해보다 초콜릿이 당기는 날


그다음엔 신체 훼손이 없는 고통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단계적 전환’을 돕는다. 고통과 쾌락은 동전의 양면이다. 부항을 뜨거나 격한 운동을 하거나 매운 걸 먹는 것처럼. 김 교사는 아이들에게 커터칼 등 도구를 내려놓고 살을 꼬집거나, 샌드백을 치거나, 달리기를 해보라고 조언한다. 그래도 자해하고 싶을 땐 도구로 두꺼운 연습장을 긁어보라고 가르쳐주기도 한다.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자기만의 건강한 방법을 찾은 아이들은 말한다. “자해하면 좀 나아진다고 해서 했던 건데, 사실 다 ×구라였어요. 차라리 초콜릿을 먹거나 게임을 하는 게 나았을 것 같아요.” 김 교사는 “스스로 깨닫는 순간이 오면 자해는 하라고 해도 절대 안 한다”며 “모든 아이가 자기에게 건강하고 좋은 방법을 찾을 때까지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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